믿기 힘드시겠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하버드 대신 한국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바로 사연 들어보시죠. 잠깐 시청 전 구독 버튼 꼭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에릭 존슨입니다. 32살이고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어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한 인생이었죠. 하지만 지금 저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려 합니다. 왜일까요? 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 그 꿈을 포기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제 이야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월스트리트 근처 거대 로펌에서 일했어요. 매년 수백만 원의 보너스를 받았고 맨해튼의 아파트도 있었죠.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어요. 법률 시스템이 정의를 구현하는 도구라고 믿었던 저의 순수한 꿈은 점점 깨져갔습니다. 매일같이 대기업들의 탈세를 도와주고 부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주는 일을 했어요. 법이란 결국 부자들을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에릭 현실을 받아들여 우리가 하는 일은 정의가 아니라 비즈니스야 선배 변호사가 말했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내 가족이 미국의 시스템 때문에 무너질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일은 작년 가을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어요. 에릭 제니가 백혈병이래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죠 제니는 제 여동생입니다. 24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니던 활기찬 젊은이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있어도 치료비 부담이 엄청납니다. 제니의 치료비가 15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20억 원이 넘는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은 절망했어요. 저희는 중산층이었습니다. 부모님은 평생 교육자로 일하며 저와 제니의 교육비를 모아 오셨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집 한 채를 마련해 두셨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집을 팔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거예요. 의사의 냉정한 말에 우리 가족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30년 동안 살아온 집을 팔아야 했어요. 저도 변호사로서 번 돈을 모두 제니의 치료비에 보텼지만 그래도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시스템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질문이 저를 끊임없이 괴롭혔어요.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건 옳지 않아 더 나은 시스템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답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요. 미국 명문대를 나와 성공했지만, 진정한 행복과 안전을 느끼지 못했던 저의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나는 제니의 병원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어요. 주말에도 로펌에 나가 시간당 청구 금액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죠. 평일에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내 건강은 나빠졌고 교우 관계는 사라졌어요. 그런데도 제니의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에릭 너무 무리하지 마 넌 내 인생도 있잖아. 제니가 나를 걱정하며 말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내 여동생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일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두통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이 흐려지더니,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동료들이 구급차를 불렀고 나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보험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응급 치료를 위한 예치금 5천 달러를 결제해 주세요. 이것이 미국 응급실에서 들은 첫 마디였어요. 내가 괴로워하는 동안 병원 직원은 내 보험과 지불 능력부터 확인했습니다. 결국 6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진료를 받았고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탈진 상태였어요. 휴식이 필요하세요. 일주일 정도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웃음이 나왔어요.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다음 날 아침 나는 또다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일주일 후 응급실 치료비 청구서가 도착했어요. 만 2천 달러 한국 돈으로 약 1600만 원이었습니다. 단 몇 시간의 응급실 체류와 기본적인 검사만으로 이 정도 금액을 청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 무렵 대학 시절 친구인 경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경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있었어요. 에릭 제니 상태가 어때 한국에서는 그런 치료비 걱정이 거의 없는데 왜 미국에서 그렇게 힘들어해 경수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어요. 경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이 있어 중증 질환의 경우 치료비의 대부분을 정부가 부담한다는 거였죠 백혈병 같은 경우엔 본인 부담금이 거의 없어 몇백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요. 미국에서는 20억 원이 넘는 치료비가 한국에서는 몇백만 원이라니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건 말도 안 돼 그럼 왜 미국은 이렇게 비싼 거야. 경수의 대답은 간단했어요. 미국은 의료가 비즈니스니까 한국은 의료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여기지 이 대화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나는 한국에 대해 더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의료 시스템뿐만 아니라 교육 치안 대중교통 인터넷 속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게 진짜 선진국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펌에서 일하면서도 틈틈이 한국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한국어 앱을 다운로드해서 기본적인 인사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도 읽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직접 가 봐야겠어 창사에게 이 주일간의 휴가를 신청했어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내가 쓰러진 이후로 내 건강 상태를 우려하고 있었기에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의 긴 여정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어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느껴지는 효율성과 첨단 기술 깨끗한 환경이 미국의 낙후된 인프라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경수가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에릭 한국에 온 걸 환영해 이번 기회에 꼭 한국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방문이 단순한 휴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2주일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죠. 경수의 안내로 서울 시내를 둘러보는 첫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깨끗한 거리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 그리고 밤낮없이 움직이는 대중교통이었어요. 맨해튼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에릭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대도시 중 하나야 여자들이 밤에도 혼자 다닐 수 있지 경수가 자랑스럽게 말했죠. 둘째, 날 저녁 우리는 한강 공원에서 치맥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었어요. 갑자기 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통증이 점점 심해졌어요. 에릭 얼굴이 창백해졌어 병원에 가자 경수의 말에 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응급실 경험이 떠올랐거든요. 보험도 없는 외국인이 한국 병원에 가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청구할까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택시를 타고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접수처에서 여권을 보여 주자 간호사가 말했어요. 외국인이시네요. 급한 상황이니 바로 검사부터 진행할게요 미국에서처럼 보험이나 지불 능력을 먼저 확인하지 않았어요. 대신 의료진이 즉시 나를 진찰하고 초음파와 혈액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의사가 진단 결과를 설명해 주었어요. 급성 위장염이시네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입원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계산대로 가는 순간 내 마음은 무거웠어요. 얼마나 비쌀까 하는 생각뿐이었죠. 미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최소 몇천 달러는 나올 것 같았습니다. 총 병원비는 13만 원입니다. 달러였어요. 미국에서 비슷한 치료를 받았을 때 만 이천 달러가 청구된 것과 비교하면 믿기지 않는 금액이었습니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렇게 싸지 내가 물었어요. 경수는 웃으며 대답했죠. 이것도 비싼 편이야 한국인이었으면 건강보험으로 더 싸게 처리됐을 거야. 그날 밤 호텔 방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왜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국민에게 제대로 제공하지 못할까 내가 평생 믿어온 미국의 우월성이란 환상이 하나둘 깨져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경수는 나를 제니와 비슷한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서울의 유명 암센터로 데려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의사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전문 지식도 미국 의사 못지않았습니다. 미국에서 백혈병 치료비가 150만 달러라고요. 여기서는 한국인 기준으로 본인 부담금이 천만 원 정도입니다. 약 8천 달러죠 나는 귀를 의심했어요. 이십억이 8천 달러로 게다가 치료 성공률도 미국 병원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나요? 미국은 의료 시스템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잖아요. 한국은 국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 시스템이 있어서 비용을 낮출 수 있어요. 그 순간 나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어요. 내 가족이 집을 팔아야 했던 이유가 제니가 치료비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이유가 단지 미국의 의료 시스템 때문이었다니 우리 가족이 겪은 고통이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요. 의사는 동정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한국의 일반 가정집에 초대받았어요. 경수의 사촌 가족이었죠. 그들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어요. 남편은 회사원 아내는 교사였습니다. 두 아이는 각각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죠. 저녁 식사 중에 그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봤어요. 놀랍게도 그들은 의료비나 교육비에 대한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대학 등록금도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고 직장에서는 충분한 휴가와 복지 혜택을 제공했어요. 한국도 문제가 많아요. 경쟁이 치열하고 주택 가격도 비싸죠 하지만 적어도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파산할 걱정은 없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어요. 내가 평생 믿어온 미국식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깨달았거든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경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경수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어요. 진심이야 응 진심이야 더 이상 미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그날 밤 나는 제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한국에서 본 것들 느낀 것들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죠 제니 우리가 한국으로 오면 어떨까 내 치료도 여기서 받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남은 휴가 기간 동안 나는 한국의 여러 면모를 탐색했어요. 경수는 좋은 가이드였죠 그는 나를 서울 곳곳으로 데려갔고 한국의 현대 역사와 빠른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어. 하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어 한강변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들과 최첨단 기술로 가득한 도시를 보며 그의 말이 실감 났어요. 미국에서는 인프라가 노후화되고 있는데, 한국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어 내가 물었어요. 교육에 대한 강한 열정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 한국인들은 개인의 성공보다 가족과 사회의 발전을 중요시하거든.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가 얼마나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와 우리 그쪽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법률 지식을 살려 국제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고 경수가 제안했습니다. 그 말에 희망이 생겼어요.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나는 결심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정리한 후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요 뉴욕에 돌아온 나는 즉시 행동에 옮겼어요. 먼저 로펌의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창사는 충격을 받았죠 에릭 자네는 앞으로 파트너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았어. 왜 이런 결정을 제 가치관과 맞지 않아서요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부모님과 제니에게 계획을 설명했어요. 처음에는 의아해 하셨지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듣고 난 후에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정말 제니의 치료비가 그렇게 차이 나니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네 아빠 우리가 집을 팔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한국에서는 국가가 중증질환 치료비의 대부분을 부담해요.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우리가 알았더라면 제니는 내 결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어요. 오빠 나도 한국으로 갈래 치료도 거기서 받고 싶어 그렇게 우리 가족은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모님은 미국에 남아 남은 일들을 정리하시고 나와 제니는 먼저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한국에서 제니의 치료가 잘 진행된다면 부모님도 나중에 오시기로 했죠. 세 달 후 나와 제니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경수의 도움으로 서울 마포구의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나는 영어학원에서 일자리를 얻었어요. 미국 변호사 자격증과 하버드 법대 졸업장이 큰 도움이 됐죠 제니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어요. 외국인이었지만 장기 체류 비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수의 예상대로 치료비는 미국의 일부에 불과했어요. 놀라운 것은 의료진의 태도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의사를 만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예약 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의사들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간호사들은 항상 친절했습니다. 미국 병원에서는 내가 그저 돈벌이 수단 같았는데 여기서는 진짜 환자로 대해주는 것 같아 제니가 말했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제니의 상태는 점차 호전되었고 나도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갔어요.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즐기게 됐습니다. 어느 날 경수가 제안했어요. 에릭 너 아예 한국 국적 취득해 볼 생각 없어 영주권보다 국적이 여러모로 편할 텐데 가능한 일이야 내가 물었죠. 물론이지 귀화 시험을 통과하면 돼 한국어 능력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테스트하는 거야.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점점 그 생각이 진지해졌어요. 왜 한국인이 되면 안 되지 이미 내 마음은 한국에 있었고, 미래도 여기서 그려 나가고 싶었거든요. 그래 한번 도전해 볼게 그날부터 나는 귀화 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요. 한국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한국 역사와 문화 사회제도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했습니다. 부모님은 내 결정에 놀라셨지만 지지해 주셨어요. 내가 행복하다면 우리도 기쁘단다 미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미국인 에릭 존슨이 아니라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선택의 후회는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해 갔죠 한국어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해졌고 김치와 고추장 같은 매운 음식도 즐기게 되었습니다. 제니의 상태도 점점 좋아졌어요. 한국 의사들의 꾸준한 치료와 관리 덕분에 백혈병이 완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미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한국에서는 현실이 되었어요. 오빠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날 제니가 병원 정원에서 햇빛을 쬐며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눈물이 나왔어요. 제니가 희망을 되찾은 모습을 보니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 얼마나 옳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여전히 미국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되었고 때로는 그리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 친구들과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운명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귀화 시험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공부하던 중 갑자기 심한 복통이 찾아왔어요. 아마도 저녁에 먹은 매운 떡볶이 때문인 것 같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악화되었고 결국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제니를 깨웠어요. 제니 정말 아파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제니는 즉시 일어나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15분 만에 구급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어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료진이 달려왔습니다. 어디가 아프신가요? 내가 복통을 호소하자 그들은 즉시 기본 검사를 시작했어요. 혈압 체온 심박수를 체크하고 혈액 검사도 진행했습니다. 영어를 구사하는 의사가 상세히 증상을 물어보았고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어요. 급성 충수염입니다. 즉시 수술이 필요해요. 진단이 내려지고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수술실로 향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의료진은 전문적이고 차분했어요. 제니에게도 영어로 상황을 잘 설명해 주었죠.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병실에서 눈을 떴어요. 경수가 제니와 함께 병실을 찾아왔고 의사도 회진을 왔습니다. 수술이 잘 됐어요. 2~3일 후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부드럽게 진행되어서 믿기지 않았어요. 미국에서의 응급실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퇴원할 때 받은 병원비였습니다. 총 병원비는 330만 원입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본인 부담금은 50만 원이에요. 한국 돈 50만 원 미국 돈으로 약 340달러였어요. 미국에서 같은 수술을 받았다면 최소 2만 달러는 청구되었을 겁니다. 퇴원 후 나는 이 경험을 블로그에 자세히 기록했어요.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 차이 그리고 내가 느낀 문화적 차이에 대해 썼죠 예상치 못하게 이 글이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에릭 정말 한국에서 수술비가 그렇게 싸니 믿기지 않는데 너의 경험담을 읽고 나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 심지어 내가 일하던 로펌의 동료들도 연락해 왔어요. 그들 중 일부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깊이 공감했죠. 얼마 후 로펌의 한 후배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내 인생관을 바꿨어요. 한국이 정말 그런지 직접 보고 싶어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어요. 내 선택이 단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그것을 알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점점 더 한국에 애착을 갖게 되었어요. 단순히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속하고 싶은 곳이 되어 가고 있었죠. 그리고 그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어느 날 경수가 물었어요. 에릭 귀화 시험은 준비가 잘 돼 가 열심히 하고 있어 근데 생각보다 어려워 당연하지 한국사 헌법 문화 심지어 많은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 내용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어요. 그래도 해낼 거야. 정말로 한국인이 되고 싶거든. 경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죠. 에릭 너 미국 국적을 포기할 준비도 됐어 한국은 이중 국적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거든. 그 질문은 나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어요. 미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여권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내 정체성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죠. 하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 특히 충수염 수술 경험은 내게 확신을 주었어요. 이건 단순한 편이나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고 싶다는 진정한 열망이었습니다. 준비됐어 내가 찾은 가치와 맞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경수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어요. 진심으로 환영해 너는 이미 마음으로는 한국인이야 귀화를 결심한 후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어요. 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에 등록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 법률 등 귀화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는 과정이었죠. 에릭 씨 귀화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한국어 능력이 중요합니다. 프로그램 담당자의 말이 맞았어요. 한국어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발음부터 어순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까지 모든 것이 영어와 너무 달랐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죠. 매일 아침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 후 저녁에는 한국어 학습에 몰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릭입니다. 미국에서 왔어요. 처음 이 문장을 완벽한 발음으로 말할 수 있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작은 진전이었지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국어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었어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 과정은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한국인들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한국 역사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미국의 역사와 비교하며 나는 한국인들의 끈기와 단결력에 감동했어요. 한국 헌법과 법률 체계를 배우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미국 법과 한국법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은 법률가로서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어요. 한국헌법 제1조의 내용과 의미를 서술하시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간단한 문장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6개월이 지나자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일상 대화는 물론 뉴스를 이해하고 한국 드라마도 자막 없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한국 친구들도 많아졌고 직장에서도 한국어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제니의 주치의가 우리를 불렀습니다. 제니 씨 축하합니다. 완전 관의 상태에 접어들었어요. 이제 정기 검진만 받으면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어요. 미국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한국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니는 새 생명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죠. 오빠 이제 나도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여기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고 싶어 제니의 말에 나는 더욱 확신을 얻었어요. 우리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자 그분들도 기뻐하셨어요. 심지어 한국 방문을 결정하셨죠. 한 달 후 부모님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분들을 직접 맞이하며 나는 가슴이 벅찼어요. 에릭 제니 너희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모님을 서울 곳곳으로 모시고 다니며 우리가 발견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첨단 기술과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 효율적인 대중교통 안전한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 너희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부모님의 한 달 방문이 끝날 무렵 그분들은 놀라운 결정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도 한국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너희와 함께 있고 싶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부모님이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 나는 더욱 열심히 귀화 시험을 준비했어요. 이제 이건 나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새로운 시작이었으니까요?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은 커져 갔습니다. 한국 역사 문화 사회 제도 헌법 등 모든 영역을 공부했지만, 충분하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특히 한국어 시험이 가장 걱정되었죠. 6.25 전쟁의 발발 원인과 주요 전개 과정을 설명하시오.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의 역할을 서술하시오.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정징의 개념을 설명하시오. 이런 예상 문제들을 풀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때로는 좌절감이 밀려왔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경수와 제니 그리고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에릭 넌 이미 마음으로는 한국인이야 시험은 그저 형식일 뿐이야 경수의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귀화 신청서를 제출하고 최종 인터뷰를 위해 법무부를 방문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담당자는 내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어요. 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려고 하나요?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당신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네요. 잠시 생각한 후 진심을 담아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발견했습니다. 개인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를요 물론 한국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더 일치하는 곳이에요. 저는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함께 발전해 나가고 싶습니다. 담당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죠. 에릭 씨 당신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이곳이 정말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미 이곳에 속해 있었어요. 귀화 시험 당일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났어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내용들을 복습했죠. 한국 헌법의 주요 조항들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사회 제도 머릿속이 온통 정보로 가득 찼습니다. 오빠 너무 긴장하지 마 이미 충분히 준비했잖아. 제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말했어요. 그녀의 말이 맞았지만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 시험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내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관문이었으니까요? 고마워 제니 하지만 이건 정말 중요해 우리 가족 모두의 미래가 달린 일이야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미국에서 온 변호사 에릭 존슨이 아닌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과연 한국 사회는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 자신은 정말 이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시험장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왔죠 중국 베트남 필리핀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접수처에서 신분 확인을 마치고 시험장으로 들어갔어요. 책상에 앉아 시험지를 받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지난 1년간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왔잖아. 시험 감독관이 시험 규칙을 설명했어요. 시험시간은 총 100분입니다. 객관식 50문항과 주관식 3문항이 출제됩니다. 종이 울리고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첫 번째 문제를 읽었어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내용은 무엇인가 다행히 익숙한 문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신 있게 답을 적었어요. 다음 문제들도 차근차근 풀어나갔습니다. 3.1운동 6.25전쟁 민주화 운동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 공부했던 내용들이 하나둘씩 떠올랐어요. 객관식 문항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풀었지만 주관식은 더 도전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의 조화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술하시오. 이 문제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한국에서 지내며 경험한 것들 배운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전통 한옥과 초현대적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의 풍경 첨단 기술로 가득한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시되는 효와 예의같이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은 조금씩 풀렸습니다. 시험장을 둘러보니 다른 응시자들도 진지하게 문제를 풀고 있었어요.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 되기 위해 같은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마지막 주관식 문제는 더욱 개인적이었어요. 귀하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이유와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서술하시오. 이 문제 앞에서 나는 잠시 펜을 내려놓았습니다. 왜 나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려는 걸까 단순히 의료 시스템이나 생활의 편리함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은 이유가 있을까? 깊은 생각 끝에 진심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법률가로서 정의와 공정함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꿔왔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발전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의료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이 된다면 저희 법률 지식과 국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국제 교류와 법률 분야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시스템의 장점을 연결하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이 이룩한 발전 경험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을 때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이것은 단순한 시험 답안이 아니라 내 진심이었습니다. 마침내 시험이 끝났어요.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밖에서는 경수와 제니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땠어 제니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죠. 생각보다 괜찮았어.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 경수가 내 어깨를 두드렸어요.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 우리 축하의 의미로 삼겹살 먹으러 갈까 그날 저녁 우리는 강남의 한 삼겹살 집에서 모였습니다. 경수의 친구들도 함께해 주었어요. 고소한 삼겹살 향기와 소주 1잔 그리고 따뜻한 대화가 오갔죠 에릭 내가 한국을 이렇게 사랑할 줄 누가 알았겠어 경수의 친구 중 한 명이 말했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말 내가 한국을 사랑하게 된 건가 이건 단순한 실용적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변화였을까? 처음에는 실용적인 이유로 한국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아 내가 조용히 대답했어요. 한국에서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발견했거든. 이게 바로 집이라는 느낌이야 그날 밤 술자리가 무르익으며 우리는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의 장단점 미국과의 차이 그리고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토론했어요. 그 순간 나는 진정한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강 다리를 건너며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습니다. 수많은 빌딩들의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마치 별들이 땅에 내려앉은 듯했어요. 이 아름다운 도시가 곧내 공식적인 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은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메일 우편함을 확인하고 이메일을 수시로 체크했죠. 그리고 마침내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에릭 존슨 씨 귀화 면접을 위해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어요. 시험은 통과했고 이제 면접만 잘 치르면 되는 거였죠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 창밖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머지않아 나는 진정한 한국인이 될 거야. 면접 당일 나는 정장을 차려입고 법무부를 방문했어요. 마지막 관문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한국어 인사를 연습했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머릿속으로 되풀이했죠. 면접장에 들어서자 세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어요. 중앙에 앉은 여성이 친절한 미소로 말을 건넸습니다. 에릭 존슨 씨 앉으세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쿵쿵거렸습니다. 이 면접의 결과에 따라 내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어요. 에릭 씨의 이력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한국을 선택하셨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질문에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제니의 백혈병 진단 미국 의료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한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제 여동생은 운이 좋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저는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는 진정한 의미를 배웠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진지하게 경청했어요. 두 번째 심사위원이 물었습니다. 한국 문화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 그리고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미국은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문화적 차이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임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면접은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어요.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가며 대화했고 때로는 웃음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어요. 에릭 씨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미국 국적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침묵했어요. 미국에서의 삶 그곳에서의 추억과 경험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곧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죠. 네 괜찮습니다. 저에게 국적이란 단순한 여건이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가치와 더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왔을 때 밖에서 기다리던 제니가 달려와 안겼어요. 어땠어 오빠 생각보다 좋았어.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돼 그로부터 두 달 후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의 귀화 신청이 승인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귀화 선서식 날짜가 정해졌죠 선서식 당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서 미국 시민권 포기 절차를 밟아야 했어요. 미국 여권을 제출하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기쁨과 상실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죠. 미국 대사관 직원이 물었어요. 정말 확실합니까? 미국 시민권 포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확실합니다. 그날 오후 법무부에서 열린 귀화 선서식에서 나는 다른 귀화자들과 함께 한국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어요.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선서를 마치고 한국 국적 증서를 받는 순간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나는 법적으로도 한국인이 된 거예요. 경수 제니 그리고 한국에 정착하신 부모님까지 모두 와서 이 순간을 함께해 주었죠.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셨어요. 정말 자랑스럽구나 넌 항상 옳은 이를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어. 그날 저녁 우리는 한강 공원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습니다. 한국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두 모였죠 소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어요. 여러분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건배 건배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한강의 밤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나는 이 나라의 공식적인 일원이 되었어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거죠. 귀화 후 1년이 지났어요. 나는 이제 한국 이름도 갖게 되었습니다. 정 에릭 존 에릭 국제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기업들을 돕고 있어요. 제니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부모님은 서울 근교에 작은 집을 마련하셨죠. 언론에서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버드 출신 미국 변호사가 한국 국적을 선택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고 방송 인터뷰 요청도 왔습니다. 한 유명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물었어요. 정혜릭 씨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일 감사함을 느끼죠 한국은 단순히 제가 사는 곳이 아니라 제 가치관과 일치하는 곳이에요. 여기서 저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후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그들은 더 나은 사회 시스템을 찾아 이주를 고려하고 있었고, 내 경험이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도 한국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요. 이런 메시지들을 받을 때마다 내 선택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움직이는 작은 물결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오늘 나는 한강 공원에 혼자 앉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강물에 반사되어 춤추고 있어요. 이 도시 이 나라가 이제는 진정한 내 고향이 되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어요. 미국에 남아있는 옛 동료의 전화였습니다. 에릭 아니 정해릭이라고 불러야 하나 한국 생활은 어때 정말 좋아 지금까지 내린 결정 중 최고의 선택이었어 정말 그럼 후회는 없어 이 질문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한강 공원에서 산책하는 가족들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라는 감각이 살아 있는 공동체 전혀 없어 나는 이제 한국인이고 이것이 내 진짜 집이야 통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한 번 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나는 깊은 감사함을 느꼈어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더 나은 삶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제 나는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겠죠. 어떻게 그들의 아버지가 대양을 건너 진정한 집을 찾았는지에 대해서요. 나는 이제 한국인이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에릭 존슨 씨의 사연 어떠셨나요? 단순히 의료비 때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진정한 집을 발견한 에릭의 여정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세계 최강 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을 떠나 한국을 선택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세계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시스템인지 에릭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감동을 향한 여정 감동여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